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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결국 몸이 아니고 뇌가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축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축구를 단순히 공을 발로 차면서 하는 행위가 아닌,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에서부터 시작되는 활동으로써 이해해야하는 것은 확실히 맞는 얘기다. 하지만 뇌 또한 우리 몸의 일부로써 기능하는 신체 기관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몸과 고립시키고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으므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와 뇌라는 두 단어를 연관지어서 얘기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 거리감은 상당히 클 수 밖에 없고, 어쩌면 뇌라는 단어를 축구와 엮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 조차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뇌라는 단어, 그리고 뇌와 관련된 지식은 우리가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서는 접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생소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뇌는 굳이 축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그 어떤 신체 기관보다 큰 영향을 우리의 삶에 미친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밤에 잠이드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뇌는 우리가 내리는 모든 판단과 결정을 관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판단과 결정은 크게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축구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무의식적으로 뇌가 내리는 판단과 결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위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이니에스타의 득점은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3년 동안 9관왕을 기록했던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헤게모니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도 같았던 득점이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니에스타는 왼쪽에서 패스가 넘어온 것을 컨트롤 하지 않고 오른발로 다이렉트로 처리했고 공은 골대 우측 상단으로 향했다. 수비의 위치나 여러가지 정황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득점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공이 향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이후 다수의 기자들이 득점의 주인공인 이니에스타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넸다.


Q. 공을 차기 전에, 슛팅을 하기 전에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그 공간이 유일하게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나요?
그러자 이니에스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A.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전 그저 제 혼을 담아서 공을 찼을 뿐이고, 공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대중들은 선수들이 행하는 행위의 대부분이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축구의 특성상 이는 사실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텔레비젼이나 모바일 중계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레벨의 경기들에서는 선수들에게 주어진 공간적/시간적 여유가 극히 제한적이다. 이는 축구라는 종목을 행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써 이뤄지는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을 통해서 경기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니에스타의 위와 같은 인터뷰는 그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의 뇌과학 분야에서 정설로서 받아들여지는 의식-무의식의 관계와도 일치한다. 선수가 특정 동작을 취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최근의 뇌과학은 해당 동작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무의식을 통해서 선수는 특정 동작을 실행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선수의 의식은 해당 동작이 실행되었다는 정보를 전달 받고 이를 본인의 자유 의지(libre albedrío)를 통해서 선택했다고 인식한다' (Rafel Pol, 2011)

 

이를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특정 행동의 의도라는 것은 사실상 무의식을 통해서 실행된 행위에 대한 ´이유 혹은 설명´으로써 후에 덧붙여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의식이라는 것 또한 우리의 행동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행동을 시작하는 그 시발점으로써 기능하기 보다는, 무의식을 통해서 결정된 행동에 대한 일종의 '거부권'으로써 활용된다. 즉 무의식을 통해서 결정된 행동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의식이 개입하여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Libet, 1983). 반면 앞서 말했듯이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축구에서 행해지는 선수들의 동작들에는 이러한 거부권으로써의 의식이 개입하는 비중 보다는 무의식이 개입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의식의 행동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무의식이란 결국에는 말 그대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우리의 자유의지로는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일까? 무의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으로 인해서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무의식의 행동, 특히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종목에서 행해지는 무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 동작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기억'이라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통 기억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회상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생각하고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은 저장되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그 종류가 나눠지게 되는데,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무의식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억은 바로 장기기억의 한 종류인 '절차기억'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기억은 크게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뉘게 되고, 장기기억의 경우에는 또 다시 외현기억과 암묵기억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외현기억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기억인 반면, 암묵기억에서의 절차기억은 습관화, 즉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남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몸에 남는 기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기억이 바로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반응을 일으키는 우리의 뇌에 내재된 기억인 것이다.

 

축구로 상황을 설정할 경우 공이 우리를 향해 왔을 때 그 공을 컨트롤 하는 동작,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동작, 그리고 골대를 향해서 슛팅을 시도하는 동작까지 우리가 기술이라고 하는 모든 동작들은 이처럼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우리 몸에 남는 기억인 절차기억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실행되게 된다. 이말은 결국 선수가 자신이 경기에서 실행하는 동작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특정 행동을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습관화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경기 중에 개입하는 이 무의식의 영역에도 충분히 개입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이러한 선수의 무의식의 영역에 개입해서 올바른 습관의 형성에 기여해야하는 것이 바로 훈련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이다. 훈련 방법론에 대한 포스팅기술과 전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포스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축구는 단순히 기술적인 행위를 실행하는 것으로는 선수가 경기에서 온전하게 기능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놓인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당 상황에 대한 적응, 혹은 적절한 해결책으로써 기술적인 동작을 실행해야만 하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 경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 상태에서 반복과 연습을 해야지만 유효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이강인이 느끼는 스페인과 한국 선수들의 차이 : 7분 17초부터 9분1초.> 스페인 선수들은 폼, 즉 기술적인 능력이 조금은 부족할지라도, 올바른 상황인식과 판단(전술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11대11 상황을 타개한다. 또한 가장 경기에 가까운 훈련은 결국 경기이고, 훈련은 결국 경기에서 발생하는 상황의 연출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축구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의 훈련 방법론과 국내의 훈련 방법론에는 비교적 큰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유소년 레벨에서 이 접근방식의 차이는 굉장히 두드러진다. 우리가 축구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이 이렇게 축구의 훈련과 경기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를 뇌과학적인 관점에 두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경기 상황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선수들이 올바른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해서 국내에서 흔히 얘기하는 코디네이션이나 레슨, 즉 마커나 장비들을 배치해 놓고 움직이는 동료나 상대 없이 공을 가지고 선수 개인이 기술적인 동작을 반복하는 '상황 인식이 배제된' 형태는 훈련의 보조가 될 수는 있어도 주가 되지는 않는다.

 

오프사이드. 쓰로인, 골킥 등 축구의 규칙이나 여러가지 상황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직 힘들고, 축구라는 행위를 하기에 앞서 온전하게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법을 학습해야 하는 미취학 아동 연령대의 경우, 그런 형태가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미 축구 경기에서의 규칙이나 온전하게 축구 종목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대에만 이르더라도, 통상적으로 훈련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전술적인 상황 안에서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되게 된다.

 

아직은 기술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컨트롤에 실패해 동료로부터 건네 받은 공이 발에서 튀어나간다고 할지라도, 움직이는 동료가 있고 움직이는 상대가 있는 상황 안에서 그 컨트롤이라는 기술 능력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컨트롤이란 다음 플레이를 전개하기에 적절한 것이 되어야만 하는데, 움직이는 동료와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음 플레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 기준 자체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상황 인식이 없는 형태로 훈련을 반복했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상황 인식이 배제된 '공과 나'라는 관점에서의 습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본 것처럼 훈련은 결국 무의식의 단계에 개입할 수 있는 습관을 형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뇌의 가소성' (뇌가 외부 자극에 대해 상호작용 하는 능력)이 가장 높은 시기인 만 8세에서 16세 사이에 축구 경기에 존재하는 요소, 즉 '나, 상대, 동료, 공'이라는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공과 나'라는 요소만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습관이 형성된다면, 이는 결국 상대와 동료라는 요소들이 개입하는 경기 상황이 되었을 경우에는 굉장히 크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기술-전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포스팅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기술적인 능력을 분리시켜서 보았을 때는 분명 능력이 출중한 선수이지만, 움직이는 동료와 상대에 대해서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경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황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의 결여로 인해 그 기술적인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장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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