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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1.18 포지션 파괴? 현대 축구에서의 포지션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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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축구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전투, 혹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이 굉장히 용이해졌고, 특히 프로 레벨에서는 TV 중계 화면이 아닌 11vs11의 상황의 연속으로써 촬영된 경기 영상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상 정보를 기반으로 사전에 상대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의 정체성(게임 모델)은 잃지 않되 상대의 강점은 무력화, 반대로 상대의 약점은 극대화 할 수 있게끔 훈련을 통해서 팀을 준비 시키는 것이 전략 수립의 과정으로써 정립되었다.

 

 

전략의 수립과 실행 싸이클

 


반면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가져가게 되면서 전략 수립 과정에서는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기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갈리고 있으며, 전략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어떤식으로 상대할 것이냐'는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아이디어와, 이를 운동장에서 직접 실행하는 선수들의 전술적 수행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10년 간 축구는 공을 가진 공격 국면에서 큰 변혁을 가져왔다. 공을 가진 상황에서 공의 소유권을 잃어버려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는 변수를 최소화 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좀 더 본질적으로는 상대 골대를 공략할 수 있는 위치까지 공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큰 발전을 이뤄왔다. 이에 대한 결과로 우리는 공의 위치에 따라 11명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를 가지고 해당 팀의 경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이 상대 골대를 공략할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상황을 몇번이나 연출했느냐에서 선수들의 전술적 수행 능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목적은 정반대 되지만 수비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축구가 공격 국면에서 상당히 큰 폭으로 변화를 가져감에 따라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수비 국면에서의 접근법 또한 정교해질 수 밖에 없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전 분석의 과정을 거쳐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전략 수립과 이를 실행하는 선수들의 전술적 능력이 극단적으로 개선될 수 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 : objetivoanalista.com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완전히 대척되는 입장에서 존재하는 공격 국면과 수비 국면이지만, 이 둘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공격 국면에 놓인 공의 위치에 따라서 팀이 11명이 유기체로써 움직이며 자신들의 포지션에 변화를 주며 상대를 공략하려고 한다면, 반대로 수비 국면에 놓인 팀은 해당 포지션 변화에 대응하는 관점에서 어떤식으로 자신들의 포지션에 변화를 주며 이를 무력화 시킬 것이냐가 양 팀의 전략이자 이를 수행하는 전술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감안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포지션은 풀백, 센터백 등으로 대변되는 '역할' 관점의 포지션이 아닌, 온전하게 '선수의 경기장에서의 위치'라는 관점에서의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축구 종목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이렇게 포지션을 두가지 의미로 나눠서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선수는 공격 국면과 수비 국면에서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포지션이란 특정 공간에 위치하는 선수를 일컫는 말이었으며, 선수는 해당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플레이를 가져갔기 때문에 우리는 '위치=역할'의 관점에서 포지션을 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Beier/Getty Images for FC Bayern


반면 현대 축구에서, 특히 최근 10년 간 축구가 발전해 온 관점에서 보았을 때 포지션은 더 이상 위치와 역할을 동시에 내포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가짜 공격수'(Falso nueve) 혹은 '가짜 풀백'(Falso lateral)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포지션을 위치=역할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 기존의 선수들이 위치하던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플레이 하는 경우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공격 국면과 수비 국면에 대한 이해 과정에 도입했을 경우, 우리는 기본적으로 공격 국면에 놓인 팀이 수비 국면에 놓인 팀에 비해 선수 포지션이라는 것에 더해서 좀 더 큰 폭의 자유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그렇기 때문에 수비 국면에 놓이게 되는 팀이 사전 분석을 통해서 상대를 무력화 시키기 위한 준비가 아무리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전술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레알 베티스와 세비야의 국왕컵 전반전 발생한 상황 ; 오른쪽 측면에 위치한 까날레스의 포지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위 영상은 레알 베티스와 세비야의 국왕컵 경기 전반전에 발생했던 상황을 재현한 영상이다. 레알 베티스가 공을 가지고 공격을 전개하는 공격 국면에 놓여 있으며, 반대로 세비야는 공을 가진 레알 베티스의 공격을 무력화 시켜야 하는 수비 국면에 놓여 있다. 최후방에 위치한 후이 실바가 공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베티스는 위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알렉스 모레노에게 공을 전개 시켰는데, 알렉스 모레노에게 공이 전개된 이후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까날레스의 위치 변화이다.

까날레스는 통상적인 위치=역할 관점에서의 포지션으로 보았을 경우 1.4.2.3.1 에서 오른쪽 윙어 혹은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이다. 반면 세비야와의 경기에서 까날레스의 역할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치와 역할을 분리시켜서 보아야 한다.이 날 경기에서 까날레스는 경기장을 가로로 2등분 했을 때 공이 자신들의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오른쪽 윙어 혹은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가 위치하는 공간에서 플레이를 펼쳐보였지만, 반대로 공이 왼쪽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오른쪽 절반에서 완전히 벗어나 왼쪽 절반으로 넘어와 플레이 하며 공을 중심으로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날레스의 포지션 변화는 결국 공격 국면에 놓인 베티스가 공에 대한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선수의 포지션에 대해서 다소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간 것인데, 반대로 수비 국면에 놓인 세비야는 해당 상황에서 이를 무력화 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포지션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 까날레스에 대한 마킹을 가져가야 했던 것은 레킥이었지만 만약 레킥이 까날레스를 따라서 이동했다면 레킥이 지켜야했던 공간은 완전히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베티스 입장에서는 보르하 이글레시아스나 베예린을 통해서 해당 공간을 직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기에 레킥은 까날레스의 이러한 포지션 변화를 두고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리버풆과의 경기에서 쟈카가 퇴장을 당했던 장면; 쟈카가 조따를 트랙백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 마갈량이스와 피르미누의 위치에 주목해 보자.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까날레스-레킥의 사례와는 반대에 해당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있었던 리버풀과 아스날의 경기에서 쟈카가 퇴장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우리는 공격 국면에 놓인 팀이 포지션 변화를 통해서 수비 국면에 놓인 팀을 상대로 이점을 가져가는 것을 다른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위 영상을 보는 과정에 있어서 대부분은 쟈카가 조따를 발로 가격하면서 퇴장을 당하는 장면에 대해서 주로 언급을 하겠지만, 쟈카의 퇴장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버슨에서 조따로 롱패스가 나가기 전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영상이 시작된 직후 상황을 보면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피르미누이고, 이에 대한 마킹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마갈량이스이다. 해당 상황에서 피르미누는 통상적으로 선수가 가짜 공격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실상 백라인에 가깝게 위치하며 경기장을 세로로 보았을 때 굉장히 큰 폭으로 자신이 플레이 하는 포지션에 변화를 준 상태이고, 마갈량이스는 베티스와 세비야의 경기에서 레킥이 까날레스에 대한 마킹을 포기했던 것과는 반대로 자신 또한 큰 폭으로 포지션 변화를 주며 피르미누에 대한 마킹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상황의 결과로써 발생한 것이 바로 마갈량이스가 이탈한 공간으로 전진하는 조따를 향해 나가는 로버슨의 롱패스였으며, 쟈카의 레드카드는 마갈량이스가 피르미누를 마킹하기 위해서 가져간 포지션 변화에 따른 결과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

 


위의 두 가지 예를 통해서 우리는 선수의 포지션의 변화, 즉 플레이하는 위치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공격 국면에 놓인 팀이 수비 국면에 놓이는 팀에 대해서 어떤식으로 우위에 놓여 있게 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수비 국면에 놓인 선수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지역방어에 기반해 '공간과 선수'라는, 두 가지 대상을 동시에 수비해야 한다. 자신이 마킹해야하는 선수가 자신이 수비해야 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움직일 경우, 즉 자신이 수비 해야하는 공간과 선수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공간이냐 선수냐에 대한 양자택일의 상황에 강요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공격 국면에 놓인 팀은 해당 선택을 강요하는 것 자체로 거기서 어떠한 선택이 나오더라도 공에 대해 벌어지는 다음 상황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공격 국면에 놓인 팀의 선수가 이처럼 비교적 큰 폭으로 플레이 하는 위치에 변화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이를 '프리롤', 즉 선수가 공에 관여하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서 설명했던 현대 축구의 특징을 감안했을 때 최근의 축구, 특히 탑레벨에서의 이러한 포지션 변화는 대부분이 전략성, 즉 계획된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사전 분석을 통해서 더욱더 정교해진 상대 수비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격과 수비라는 입장 차이에서부터 발생하는 선수 위치 변화에 대한 자유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았을 경우에는 선수가 자신이 지켜야 할 포지션을 벗어나 공을 소유하기 위해서 무작정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이 특정 선수, 혹은 특정 공간에 위치했을 경우에 대해서 공에 대한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실행되는 조건부 움직임일 공산이 크다.

반면 이러한 공격 국면에서의 큰 폭의 포지션 변화는 결국 공의 소유권을 잃어버렸을 경우, 즉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해야 하는 수비 전환 국면에서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동반한다고 봐야한다. 수비 전환 국면은 공의 소유권을 잃어버리기 직후의 상황으로써 공격 국면에서 팀이 공을 가지고 어떤식으로 공격을 전개했느냐에 사실상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까날레스의 경우처럼 한쪽 측면에 위치한 선수를 반대쪽 측면으로 이동시켜 수적 우위를 확보하게 했을 경우에는 공의 소유권을 잃어버린 이후 상대가 공격 방향 전환을 통해서 역습을 전개하는 것에 취약할 수 밖에 없고, 피르미누처럼 전방의 선수를 낮은 지점까지 내려오게 했을 경우에는 공의 소유권을 잃은 상황에서 해당 선수의 수비적인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해당 지점에서 곧 바로 공의 소유권을 되찾을 확률은 줄어들게 된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기에 애초에 공의 소유권을 잃을 확률을 최소화 하는 관점에서도 이러한 포지션 변화가 시도 되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에 따라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분명히 갈릴 수 밖에 없고, 대표적으로 과르디올라의 경우에는 가짜 공격수나 가짜 풀백 이상으로 특정 선수 포지션에 대해서 큰 폭으로 변화를 주는 것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앙리의 바르셀로나 시절 경험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선수의 포지션 변화를 가져감으로써 상대 수비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기는 하되, 어디까지나 공을 잃어버려 수비로 전환되는 국면에서 문제를 겪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이러한 변화가 이뤄지는 것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겠다.

티에리 앙리, "가장 중요한 것은 포지션이었다. 누구든 자신의 포지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했고, 동료를 믿고 공이 자신에게 올 때 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훈련에서 과르디올라는 특히 챠비와 이니에스타가 이것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경기장을 가로로 2등분 하는 형태로 콘을 라스트 써드까지 놓곤 했다. 해당 콘을 기점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선수들은 왼쪽으로 넘어와서는 안 됐고, 왼쪽에 위치한 선수들은 오른쪽으로 넘어와서는 안 됐다."

 

Posted by 장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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